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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공항에서 드디어 평양행 오전11시30분 비행기에 올랐다. 올 3월부터 방북 준비를 해오던 중 여러 차례 SARS, 국내외 정치적인 사항 등으로 연기되다 이번에야 성사가 된 것이다. “안녕하십네까? 어서오십시오.” 소탈한 미소를 띄며 고려항공 승무원들이 인사를 건넨다. 난생 처음 나에게 말을 거는 북측사람이다. 고음과 특유의 억양이 있는 북측말투와 의무감이 아니라 반김이 역력한 표정이 사랑스럽다. 기내 음료로 제공되는 ‘배사이다’ 맛이 시원하고 상큼하다. 조금은 진한 맛을 내는 옆 사람의 ‘룡성맥주’도 한 모금 얻어 마셨다. 나눠주는 ‘로동신문’, 월간지‘조선’을 읽으며 이번 방북이 오랜 분단으로 인해 야기된 차이와 그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같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한시간 반정도 비행 후 압록강을 지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북경까지 비행시간과 거의 같다. 우리를 방북기간동안 안내할 안내선생 박히철, 현준일선생과 인사하고 평양시내로 향했다. 도로가의 코스모스, 저 멀리 띄엄띄엄 솟아있는 미루나무, 언덕배기의 밭과 논은 남측 중부지방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 그렇지 참. 서울과 평양까지는 서울과 대전까지 만큼만 떨어져있는 곳이지. 도로를 달리면 한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를 일박이일로 돌아왔구나......’ 평양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김일성 종합대학, 개선문 등이 보이고 다양한 모양의 고층 아파트들이 보였다. 자동차, 무궤도 전차 등이 도로를 달리고, 울창한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고, 자그마한 가게가 간혹 눈에 띄는 게 유럽의 어느 유서 깊은 도시를 보는 듯하다. 숙소인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식당에서 ‘동석식사’를 했다. 맥주잔인 큰잔, 와인잔인 중간잔, 소주잔인 작은 잔이 앞줄에 나란히 놓여있고 한식과 양식의 다양한 음식이 나왔다. 몇 번의 식사에서 느낀 점이지만, 식단은 여러 나라 음식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 맛은 담백하고 깔끔했다. 안내 선생과의 대화 “현숙 선생은 어떤 음식을 좋아합네까?” “음... 우리나라음식(한식)을 좋아합니다.” “...저... 밥, 국, 국수 등등 중에 무얼 좋아하는지 물었습네다.”“아!.네.”

평양의 아침은 밝고 경쾌한 행진곡으로 시작된다. 지하철 입구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학생들로 조직된 조그만 악단이 연주를 하고, 거리의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지하철 내에서도 음악이 흐르고... 분주한 출근길의 평양시민들과 함께 ‘어린이 영양관리 연구소’로 향했다. 이 연구소는 ‘식품안전성연구실’, ‘영양기준화연구실’, ‘젖대용품연구실’ 등등의 연구실을 갖추고 있다. 현재 어린이 의약품지원본부에서는 올 11월 중순에 개원예정인 연구소 부설 ‘어린이영양증진센터’에 약제생산설비와 약품재료를 지원중이다. 나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서 지원된 의료장비를 정검하고, 사용법에 대해 연구소분들께 설명했다. 연구소분들이 임상의사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의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큰 무리는 없었으나 기계를 직접 다룰 임상의사가 그 자리에 없는 것은 아쉬웠다. 다음날도 전날 점검하지 못한 장비를 추가 점검했는데 하룻밤사이에 사용법을 다 읽고 의문점에 대해 질문하는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비록 적은 물자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결과를 도출하려는 노력들이 아름다웠다.

점심식사로 옥류관에서 랭면을 먹었다. 랭면의 주문 단위는 100g, 200g, 300g식이고, 김치 등의 밑반찬을 따로 주문하는 것이 특이했다. 랭면은 작은 유기 그릇에 면이 소복이 담기고 국물은 자작하게 나왔다. 넓직한 그릇에 국물이 한가득인 우리측 냉면과는 다른 모습이다. 여러 종류의 고기로 우려낸 국물과 메밀의 면발이 거의 환상이었다. 오후에는 조선의학협회측과 평양시내 구역병원(구.군단위의 병원)에 대한 지원에 대해 회의를 한 후에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에 들렀다. 평양시내에 있는 소학교와 중학교 학생들 중 과학과 예체능에 소질을 보이는 학생들 5000명 정도가 방과후 특기를 연습하는 곳이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한차례씩 공연이 있다. 춤, 노래, 뮤지컬, 악기 연주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으며 실력들이 대단했다. TV를 통해서도 간혹 소개된 적이 있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하는 공연이 그전에는 작의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실지 공연장에서는 그런 표정이 감정을 더 풍부하게 전달하였다.

평양에서의 마지막날은 ‘평양 산원’을 방문하였다. 입구에서 흰 까운과 신발을 갈아 신고 임상병리, 방사선실 등을 돌아보고 갓난쟁이방(신생아실)을 둘러보았다. 신생아실을 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아! 갓난쟁이방 말입네까?’ 말들이 귀엽다. 미숙아와 중환자들이 여러 방으로 나누어져있어 한방에 몰아 넣을 경우보다 집단감염을 예방하고 집중적인 치료를 더 원활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듯 했다. 물론 장비들은 좀 오래된 것들이었다. 이후에 둘러본 평양 지하철은 2개 노선이 있고 평양 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지하 150m에 아주 깊은 곳에 있고 역사 내부공간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었다. 모자이크 벽화와 전동차내부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특이했다.

마지막날 호텔내부의 판매소에 들어갔다. 외국의 여러 화장품, 생필품과 북측에서 만든 과자, 수공예품 등이 있었다. 외국 화장품은 가격이 매우 비쌌고, 수공예품 중 특히 수예품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수예품 몇 점을 사면서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한 것들은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우수성, 여러 건축물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공예품 ... 이러한 능력들이 경쟁력을 잘 획득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지금 북측의 사는 모습은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넓은 광장마다 국가 차원의 경축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꽃술을 들고 동원되어있는 사람들, 곳곳에 조그만 상점은 있지만 개인 소유는 아니고 그곳에서 나는 이윤도 개인이 가지지 않는 집단주의 사회.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은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이 좀 더 옳고 그른가를 논쟁하기 이전에 차이와 같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교류가 필요하다. 교류의 방법은 다양한 형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당장은 부족한 의약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북경행 고려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어느새 정이든 사람들. “또 오십시오.” “또 만나요.” 다시 만날 것을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