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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 위기의 시작
1995년 이전 북한 사회는 풍족하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었다. 북한에서의 경제위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의 경제 사정도 계속 악화되어 석유, 식량 등을 수입하는데 쓸 수 있는 외화가 부족하였고 국제 신용도도 낮아 외상 거래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에는 3%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는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1993년에서 1996년 사이 GDP가 50% 정도 감소하였는데 이는 일인당 소득이 481 미국달러까지 감소한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 북한의 식량 생산은 5-6백만 톤이었으나 1990년대 초반 4-5백만 톤으로 감소하였으며 93-94년도에는 3백만 톤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연간 식량 소요량이 600만 톤 정도인데 자체 생산이 450-500만 톤 정도라면 부족분인 100-150만 톤은 외부에서 수입을 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자체 생산이 감소할수록 식량의 대외 의존도는 증가하게 된다.
1990년 이전 만해도 그런대로 곡물 수입에 의해 부족분을 메울 수 있었으나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따른 무역의 감소와 북한 경제사정의 악화로 식량 공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전만 해도 동맹국으로부터 무상지원을 받거나 우대가격으로 싼 값에 식량을 수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의 경제 사정도 악화되면서 이러한 지원도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특히 중국은 흉작으로 인해 자체 식량 공급 부족을 겪게 되면서 1994년 대북 수출을 중단하게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1993년의 냉해, 1994년의 우박 피해 등 자연피해가 늘었으며 1995,6년에 이르러 대홍수를 겪으면서 식량위기는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이후 식량 생산은 연간 3백만 톤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북한에서 식량 부족이 현실화된 것은 1992년 이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기부터 공식 배급망을 통한 식량 배급이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하루 두 끼 먹기 운동'도 이 때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1) 공식적인 배급망의 비가동으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장마당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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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벗들, 탈북식량 난민 1,694명 면담 조사결과 보고서 - 1998.12.12(www.jungto.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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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연재해의 충격
1995년 7-8월 대홍수는 유사 이래 최대의 홍수였다. 전국 200개 군 중에서 북쪽에서 서쪽으로 걸쳐 있는 145개 군이 홍수의 피해를 보았으며 전체 인구 2100만 명 중에서 10만 가구 50만 명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고*2) 520여만 명은 다양한 정도의 홍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3)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지방 정부가 제공한 자료에 근거해 보면 황해도의 경우 15만 명이 집을 잃었으며, 30만 톤의 식량 즉 당시 도민의 6개월 식량이 소실되었다. 12개의 학교, 14개의 병원, 그리고 50개의 진료소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항해도에 있는 16개 군 중에서 8개 군의 식수 공급체계가 파괴되었으며 136개 저수지 중에서 42개가 파괴되었다.*4) 평안북도 박천군의 경우, 하루에 728mm의 비가 내려 13,199헥타르의 경작지 중 7,000헥타르가 침수되고 4,700명의 인구 중 1,300명이 집을 잃었다고 한다.*5) 90년대 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던 북한은 엄청난 자연재해에 대처할 능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다. 1995년 8월 북한의 유엔대표부는 유엔기구들에 긴급구호요청을 하기에 이르며 이에 유엔인도지원국(UNDHA)은 수해지역을 현장 방문한 후 9월 12일에 대북지원관련 유엔기구들이 국제사회에 대북지원을 호소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북한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과 자연 재해의 피해가 외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도 시작되었으나 아직까지는 활발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음 해인 1996년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1996년 여름 비슷한 시기에 다시 큰 홍수가 닥쳤다. 1995년에 비해 심하지는 않았으나 누적된 피해로 인해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1996년의 수해로 8개 도 117개 시군에서 가옥, 공공건물, 탄광 등을 비롯한 공장과 시설, 논밭 등이 침수되고 서해안의 곡창지대도 대량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유실된 곡물만 100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1995년의 홍수로 인한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홍수가 발생하여 식량 부족이 더욱 가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95년과 96년에 걸친 대홍수 이후 식량 위기가 본격화하였다. 당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으며 5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식량생산도 12% 정도 손실을 보았다. 이러한 자연 재해는 북한이 지니고 있던 경제적 취약성의 문제와 결합하면서 극심한 식량부족을 야기하고 나아가 공중보건에도 위협적인 사태가 초래되었다. 대홍수와 비료 부족 등으로 인해 곡물 생산이 1984년 810만 톤에서 1996년 430만 톤으로 감소하였다. 식량 수입으로 부족분을 다 충당하지 못해 1996-1997년 기간 식량 부족량은 230만 톤에 이른다.*6) 1996년도의 경우 홍수로 인한 곡물 손실을 고려하면 실제 식량 생산량이 250만 톤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식량 부족은 300-350만여 톤에 이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7) 1996년 북한의 국제 지원을 포함한 곡물 수입계획량이 115만 톤인 것을 감안하면 순수 부족분만도 200만 톤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5-1996년 기간에 40만 톤에 이르는 국제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2-4월에는 일인당 배급량이 이전의 585g에서 100-150g으로 감소한 상태였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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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 No.5. 1995.9.5
*3) IFRC. DPR Korea: Situation Report No.03. 1997.7.31
*4)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 No.4. 1995.9.1
*5)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 No.5. 1995.9.5
*6) FAO/WFP. FAO/WFP crop and food assessment mission to DPR Korea. December 1996. Rome, Italy
*7) 법륜. 북한 식량난의 원인과 대북지원의 논리. 1997.3 (www.jungto.org)
*8) FAO/WFP. FAO/WFP crop and food assessment mission to DPR Korea. December 1996. Rom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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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악의 상황으로
1997년 봄 가뭄이 심해 7월말에는 저수지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였으며 8월21일 서해안에 밀어 닥친 해일도 식량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9) 1997년 한 보고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10) "북한 당국은 1997년 4월 134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하였다. 이 뉴스는 95년 북한의 큰 수해 이후 그 곳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제 식량 원조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 곧 밀어 닥칠 대량 아사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2-3년간 지속된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북지원 관계자들의 증언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 사실도 부분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식량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보다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였다. 1997년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최악의 기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6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유아원에 들어갈 수 있으며 여기서는 하루에 150g을 추가로 배급받을 수 있었으나 97년 3월 유엔의 현장조사에서는 유아원 출석률이 40-80%로 줄었으며 자강도에서는 추가적인 배급도 중단된 상태였다.*11) 유아원, 유치원, 학교 등 어린이 시설은 오히려 식량 지원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곳이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지원되는 식량도 일차적으로 이런 시설을 통해서 배급되었으나 정말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어린이는 이 곳에 출석하지도 못하고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 섭취 칼로리의 30%는 공식배급망(PDS, public distribution system)에서 제공하는 것 말고 다른 곳에서 보충하였으며 일차적으로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농민시장이 그 역할을 맡았으나 장마당에서도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는 없었다. 먹을 것을 찾아 장마당을 떠도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결국 야생 식용식물, 나무껍질 등을 대용으로 섭취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를 통해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는 없었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북부 중국과의 접경 지역 주민 중심으로 중국에 체류하는 난민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조선족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연변자치주 중심으로 식량 난민이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1997년 이전 중국에 머물고 있는 북한 난민은 3만여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 수가 계속 증가하여 1998년 중에는 10만 명 이상까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까지는 대부분 식량을 구하여 북한으로 돌아갔으나 1998년 들어서는 계속 체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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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FRC. DPR Korea Health and nutritional support. 1997.11.25
*10) 북한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외, 북한어린이의 참상과 의약품지원에 대한 심포지움 자료, p41, 1997.10.11
*11) CDC, Status of public health --DPRKorea, April 1997, MMWR. 1997.6.20
*12) 윤여상. 중국내 탈북자에 대한 전망과 해결 방안의 모색. <아시아 난민 실태와 북한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NGO의 역할> 워크샵 자료. 1999.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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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속되는 위기상황
북한의 식량 생산은 1995년부터 계속된 재해로 인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가 1998년과 1999년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는 듯하였지만 2000년 다시 감소하였다. 2000년에는 1999년에 비해 식량 생산이 30% 정도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는 가뭄 등 자연재해, 농업용수 부족 등 그동안 누적된 문제가 농업기반의 구조적인 취약성과 맞물려 위기가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차 식량위기가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한 식량지원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한다. 북한의 위기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황폐화 된 산림과 같이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준비의 부족, 그리고 위기 발생시 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사회적 자원의 부족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는 장기적인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기 시작하였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북한 경제가 1999년 6.2%를 기록한데 이어 2000년도에도 1.3%를 기록하였으며 2001년도에는 실질 GDP 기준으로 3.7% 증가하여 1999년 이래 연속 3년째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였다.*13) 그러나 여전히 북한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 국제 지원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1997년까지의 국제적인 지원은 식량, 의약품 등 대개 응급 지원이 주류를 차지하였으나 1998년부터는 지원의 내용이 재활과 개발 부분으로 점차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식량 및 의약품 등 기초적인 지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북 관계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1995년 대홍수 이후 국제기구 및 외국의 구호단체들뿐만 아니라 남측에서의 인도주의적인 지원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1997년 말 남쪽에서의 금융위기로 인해 관심이 일시적으로 위축되기도 하였지만 김대중정권이 들어선 후 일관되게 시행된 햇빛정책의 결과 1999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고 2000년 6월 15일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북한의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01년도에도 자연재해는 계속되고 있고 식량 및 에너지 또한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5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난 이후 80년만의 최악의 봄 가뭄을 겪었으며, 이어서 닥친 홍수 등으로 인해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하여 180만 톤 정도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파악되었다. 2001년 10월 9-10일 북한 강원도 지역에 36시간 동안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 12시간 만에 400mm이상의 기록적인 강우량을 보여 강원도 지역에서는 1910년부터 강우량을 측정한 이래 최악의 홍수였다고 한다.*14) 당시 원산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 원산시에서만 3천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와 공동으로 수해 실태 조사를 벌인 유엔인도지원국(UNOCHA)은 10월12일 발표에서 사망 81명, 부상 82명, 실종 27명의 인명 피해와 1만1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고하였다. 58개의 다리가 파괴되었으며 농경지 2천 헥타르가 침수되어 수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평양, 원산간 철도가 여러 곳 끊겼으며 원산시의 전기시설과 전화를 비롯해 제방과 수로 등도 파괴되었다.*15)
2001년 상반기 동안 북한과 유럽 국가간의 관계는 긴밀해진 반면 미국에 부시 정권이 새로 들어서면서 대북 정책이 재검토되기 시작하였고 그 여파로 남북간 대화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9월11일 미국에서 충격적인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뒤이어 아프카니스탄에서의 보복전이 시작되면서 많은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들 난민의 실태가 속속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곳에 몰리기 시작하였고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기 시작하였다. 9.11테러 이후 북한의 외환 사정도 급속히 나빠져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능력도 감소하였다. 외화 수입 창구였던 무기 판매, 일본으로부터의 송금, 금강산 관광 수입의 감소 등이 모두 감소하면서 북한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북한의 위기가 극복되고 있다는 징조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국제적 지원은 크게 감소 추세에 있다.
2002년 7월 들어서는 북한의 경제 시스템에 큰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식량배급제 폐지, 인금인상, 화폐제도 손질 등인데 변화의 핵심이 되고 있다. 쌀의 경우 1kg의 국정가격이 8전인데 비해 시장가격은 49원에 이르러 수백 배의 가격차이가 있어 1백원의 월급으로는 쌀 2kg밖에 살 수가 없었다. 7월부터는 무상에 가깝던 식량 배급을 암시장 가격 수준으로 올리고 대신 임금을 20-30배 정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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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은행, 2001년 북한 GDP 추정결과, 보도자료 2002.5.14
*14) BBC 방송. 2001.10.23
*15) IFRC. DPRK: Floods appeal No.34/2001 operations update No.4 Final report. 200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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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한의 식량 사정
성인 한 사람의 하루 최소 칼로리 요구량을 2100칼로리라고 할 때 75%정도를 배급한다고 하면 일인당 일년에 167kg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2002년도 북한의 곡물 수요량 추정치가 정상배급기준을 적용할 경우(성인 700g/일) 626만 톤이며 22% 감량배급 기준을 적용할 경우는(546g/일) 536만 톤이다.*16) 세계식량계획은 2002년도 식량 수요량을 북한 인구 2천3백만여 명 기준으로 하여 495만 7천 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5백만 톤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95/96년 시즌*17) 147만 톤, 96/97년 193만 톤, 97/98년 183만 톤, 98/99년 104만 톤, 99/00년 133만 톤, 2000/01년 219만 톤 등 과거 5년간 적게는 100만 톤, 많게는 200만 톤 이상 식량이 부족하여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이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식량 위기가 고조되었고 기근에 의한 피해가 심했던 시기가 95-98년이다. 이 시기의 세계식량계획의 식량 지원량은 [표1-1]에서 보는 것처럼 부족량에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었다. 99년 이후 북한의 위기상황 대해 외부에 자세히 알려지면서 지원량이 증가하면서 식량 위기가 어느 정도 고비를 넘길 수는 있었지만 구조적인 문제 자체가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외부 지원이 중단되면 식량 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볼 수 있다.
| [표 1-1] 세계식량계획의 대북 식량 지원 실적 |
| 구분 |
95.12-96.5 |
96.6-97.3 |
97.4-98.3 |
98.4-99.6 |
99.7-00.12 |
| 규모(톤) |
21,000 |
70,000 |
400,000 |
600,000 |
876,933 |
| 금액(백만달러) |
9.76 |
25.9 |
170.7 |
345.8 |
357.6 |
| 대상인원(백만명) |
0.5 |
1.6 |
4.7 |
6.7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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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양호. 대북 인도적 지원 실태와
향후 과제. 통일경제 2001.9에서 인용 |
| [표
1-2] 2002 곡물 연도의 식량 수요 및 공급 예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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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천톤) |
| 총
공급 예상량 |
3,656 |
| 재고 |
0 |
| 국내
생산 |
3,656 |
| -
가을 시즌 |
3,215 |
| -
겨울/봄 시즌 |
441 |
| 총
수요 예상량 |
4,957 |
| 식용 |
3,855 |
| 사료용 |
300 |
| 종자 |
144 |
| 기타(추수
후 손실분 포함) |
658 |
| 수입
필요량 |
1,301 |
| 상업적
수입 |
100 |
| 응급구호지원(지원
예정분 포함)* |
819** |
| 부족량 |
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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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옥숫, 밀, 밀가루 옥수수/콩 혼합물 포함. 콩류, 식물성 기름 등은
제외함
** Of which, 387,000 tones provided bilaterally
***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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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년 시즌(2001년 11월부터 2002년10월까지의 기간)의 식량 사정도 전보다 크게 개선되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는 일년에 두 차례 북한의 식량 사정을 평가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2002년 7월29일 발표한 상반기 평가 보고에는*18) 2002년도 130만 톤의 식량 부족을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02년도 밀, 보리, 감자 등 봄 추수에 대한 현장 조사 후에 발표한 것으로 01/02년 시즌 총 수확량을 365만 6천 톤으로 추정하여 계산한 것이다. 00/01년 시즌의 총 수확량 257만 톤에 비하면 42%의 증가를 보이지만 00/01년 시즌에 워낙 가뭄이 심했던 것을 따지면 예년 수준을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표 1-2]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세계식량계획은 01/02년 시즌 북한의 곡물 생산 예상량이 365만 6천 톤이고 총 수요량은 495만 7천 톤이기 때문에 약25%에 해당하는 130만여 톤이 모자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 북한이 수입할 수 있는 양을 10만 톤 정도로 보고 7월 말 현재까지 지원을 받았거나 지원 약속된 양 81만 9천 톤을 제하고 나면 대략 38만 2천 톤 정도의 식량 부족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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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국은행, 2001년 북한 GDP 추정결과, 보도자료 2002.5.14
*17) 95/96년 시즌이면 95년 11월부터 다음해 추수가 마무리되는 96년 10월까지를 지칭한다.
*18)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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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1-3]
식량 지원 수혜자 수 예측** |
| 고아원 (0-16세) |
7,100 |
| 탁아소 (6개월-4세) |
1,356,400 |
| 유치원 (5-6세) |
649,600 |
| 인민학교 (7-10세) |
1,394,100 |
| 고등중학교 (11-16세) |
676,000 |
| 노인 |
365,000 |
| 도단위 아동병원 입원 어린이
24,400* |
- |
| 도단위 아동병원 입원 어린이의 보호자 |
24,400 |
| 군단위 아동병원의 중증 영양장애
어린이 60,000* |
- |
| 산모 |
357,000 |
| 취로사업(FFW) 참가자 및 부양가족 |
1,200,000 |
| Additional lean season |
144,000 |
| 재난대비 |
250,000 |
| 총 |
6,423,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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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는 각각 자기 연령층(탁아소, 유치원, 학교 등)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따로 계산하지 않음.
**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7.29 |
북한은 부족한 식량에 대해서 상거래와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2002년도에는 미국(15만6천 톤), 한국(옥수수 10만 톤), 핀란드(20만 톤)로부터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이다. 중국은 지난해 장쩌민 주석이 방북했을 때 20만 톤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고, 태국이 식량 30만 톤을 신용판매하고 베트남도 쌀 5천 톤을 지원할 예정이다.*19)
세계식량계획은 1995년부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 오면서 해마다 국제사회에서 목표액의 90%이상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2002년도에는 식량 지원 목표량을 61만 1천 602 톤(약 2억불)*20)으로 정하고 북한 주민 640만 명을 대상으로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목표인 81만 톤(약 3억불)에 비해 25% 감소된 규모이다. 이와 같은 지원 계획에 따라 각국에 원조를 호소하고 있으며 6월말까지 한국. 미국, 핀란드로부터 약속 받은 45만6천 톤을 포함하여 85%에 해당하는 양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지원되는 식량들은 <표1-3>에 나와 있는 것처럼 탁아소, 유치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고아원 등의 어린이들과 산모, 노인들 그리고 취로사업(FFW)*21) 참가자 등 모두 642만여 명에게 일차적으로 지원되고 있다. 확보량의 부족으로 세계식량계획은 5월초부터는 영양부족에 가장 영향을 받는 유아와 산모들을 보호하기 위해 67만 6천명의 고등중학교 학생과 36만 5천 명의 노인에 대한 식량 보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5월에 들어 "지금 북한에서 한 세대가 없어지려한다"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있었다. 5월3일 재미한국청년연합이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 아시아지역 담당국장 존 파월과 함께 최근 북한의 식량 사정에 대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갖는 컨퍼런스콜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존 파월은 "지금 북한 상황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한 세대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지난 4월까지 각 주민 당 하루에 300g의 곡물을 배급했는데 이 배급량은 앞으로 200g으로 줄여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22) 국제 난민들조차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가 규정하고 있는 생존에 필요한 1인당 최소 500g의 배급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다. 2002년도 들어서 성인 1인 기준 하루 식량 배급량이 4월까지는 대략 300g 정도였고, 5월 250g, 6월 300g, 7월 300g으로 변동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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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계레신문. 2002.7.25
*20) 구체적으로는 곡물(52만톤), 기름(2만톤), 콩류(2.6만톤), 가공식품(2.4만톤), 설탕(1만톤), 분유 등이다. 세계식량계획은 2001년 총 73만톤의 식량을 지원(733,834톤)하였는데 이는 2001년 대북지원 목표량(81만톤)의 91%에 해당하는 양으로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일본 쌀 32만톤, 미국 밀가루 등 29만톤, 한국 옥수수 10만톤, 호주 밀가루 1만톤 등이었다.
*21) Food-For-Work(FFW) 즉 일을 하고 난 후 그 대가로 식량을 지원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취로 사업과 유사한 개념이다. 대개 국제기구나 지원단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식량을 지원받고 있다. 염전의 복구사업, 어린이 영양식 생산사업, 산부인과 병원의 복구사업, 병원과 학교의 난방 시설 복구사업, 어린이시설에 위생적인 화장실 신축사업 등의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2년도 가을시즌의 사업으로 60여 가지의 사업 제안이 된 상태이고 일정한 평가 후 채택이 되면 사업이 진행된다.
*22) 프레시안(www.pressian.com), 20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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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식량 원조가 줄어든 이유는 주요 식량 기부국이 9.11 테러 이후 피폐해진 아프카니스탄으로 발길을 돌린데다가 부시 행정부가 계속 북한을 위험국가로 몰아세우고 있으며 북한 자체의 경제 사정도 악화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년까지 식량지원을 해 준 일본 정부가 2001년도 12월 발생한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 침몰사건이후 식량 지원 약속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원인의 하나이다. 일본은 2001년도에 50만 톤을 지원했었다. 2002년 6월말 서해안에서 남북간에 교전이 일어나면서 상항은 더욱 어려워진다. 남한정부는 현재 재고가 남아 있는 쌀 30만 톤을 북측에 지원할 의사를 갖고 있었으나 서해에서의 충돌로 인해 지원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에 먹게 된 대체 식품 외에 전통적인 야생 식품을 채집해서 먹고 있다. 야생식품은 전통적으로 특히 농촌지역에서 채집해 오던 식품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식용 가능한 나물, 나무껍질, 도토리, 그리고 해안에서는 해초 등이 포함된다. 앞으로 국제기구의 지원이 줄어들면 이들 야생 식품에 대한 의존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23) 특히 북동지역과 같은 오지에서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식량난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여러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농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토의 20%만이 농사를 지울 수 있는 평야여서 식량 생산을 위해서는 산림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해도 일대를 제외하고 평지보다 산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불리한 지형적 조건 등으로 인해 농지 확보를 위해 산림을 개간하기 시작하였으나 이러한 산림 개간은 산림의 황폐화로 이어지고 이는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 취약한 상황을 초래하여 되었다. 두 번째는 집단 농장과 같은 농업 경제의 비효율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세 번째는 영농장비와 농업기술의 낙후, 그리고 비료산업과 같은 관련 산업의 붕괴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료의 부족으로 비료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농기계들도 연료와 수리 부품이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살균제와 농약도 부족하다. 북한은 대남 협상에서도 계속 비료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남한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해 요소, 복합비료 등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네 번째는 자연 재해의 피해이다. 상습적으로 냉해가 존재하는데다 지나친 농지개간사업으로 인한 산림의 황폐화로 인해 대홍수시에 적절한 대응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다.*24)*25) 북한의 산림 훼손 상태는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추운 날씨와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주민들은 나무를 잘라 난방과 조리에 사용함으로써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과의 북경지대에서는 목재가 바터 무역의 수지맞는 상품으로 종종 식량과 교환된다. 벌거벗은 산들로 토양침식이 늘어나고 기후의 변화를 가져와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가 늘어나고 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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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OCHA, DPR Korea OCHA Situation Bulletin, 2002.3.2
*24) 법륜, 북한식량난의 원인과 대북지원의 논리. 1997.3 (출처:www.jungto.org)
*25) 강정구. 북한 식량난과 사회변화. 북한 1999, 민족의 희망 찾기. 정토출판사, 1999
*26) 와인가트너, 대북지원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1999.10.15 빅토리아 대학 강연 내용 요약, 출처 : www.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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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북한의 에너지 사정
북한의 전기 사정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2001년 1월에 들어서 온성이나 라진의 경우 전기가 평균적으로 하루에 1-2시간밖에 들어오지 않으며 어떤 날에는 1시간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27)
현재 에너지난으로 북한의 전 공장 중 20%만이 가동하고 있으며 가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다.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28)
조사대상이 된 북한의 농가당 한 해 전력 사용량이 남쪽 가구가 두 달 쓰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농가의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76%는 벌크형 석탄이며 전기는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8%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북한 전력 사정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서 정전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29)
북한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이다. 식량난과 더불어 전력난으로 일컬어지는 에너지 위기는 북한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번영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위기의 시작은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식량 및 석유의 지원이 대폭 감소한다. 연간 44만 톤에 이르던 러시아의 석유 공급량이 4만 톤으로 감소한다. 거듭된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한 탄광, 발전설비 등의 피해, 석탄과 수력 위주의 경직된 수급체제 등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에 에너지원을 수입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탄광뿐만 아니라 수력 발전시설의 대부분도(최고 85%까지) 대홍수 기간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주요 수력 발전 시설 일부분의 위치가 홍수가 심하게 일어났던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홍수에 의해 하구쪽으로 씻겨간 부분이 상당하다고 하지만 사실 확인은 안되고 있다.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 보니 석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북한의 에너지원별 공급구조를 보면 2000년의 경우 석탄이 71.7%, 수력이 16.2%로 전체 에너지 공급의 87.8%를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는 7.1%에 그치고 있고 나머지가 5% 정도이다.*30) 1999년 1차 에너지의 석탄의존도가 세계평균 23.5%, 남한의 경우 21%인 것에 비하면 굉장히 높다. 이 같은 에너지 수급 구조는 해외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국산 에너지의 생산 및 소비를 극대화하려는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승리화학공장과 봉화화학공장 등 북한에 있는 두 곳의 정유설비의 원유정제능력은 연3백50만 톤에 달하나 원유 수입량이 50-100만 톤에 불과하므로 가동률이 30%에 못미치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정책이 석탄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석탄 생산량은 계속 감소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80년대 말 약 4천300만 톤에 달했던 석탄 생산량이 92년도에는 2천920만 톤, 99년도에는 2천 100만 톤으로 감소한다.*31) 2000년의 생산 실적이 1985년의 60%에 불과한 실정이다. 석탄 매장량의 고갈, 탄광시설과 채탄 장비의 노후화, 채탄 조건 악화 등으로 생 산량이 감소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전력 생산이 감소하므로 채탄 장비나 화차의 가동이 어려워져 생산은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거듭된 수해로 인해 저지대의 많은 탄광들이 심각한 침수 피해를 입었으나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생산 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00년 북한의 발전설비 규모는 7백55만2천kW로 그 가운데 52.8%는 수력설비로 나머지 47.2%는 화력설비로 구성되어 있다. 설비 규모 면에서는 남한의 15.6%에 해당하나 정상적인 수준의 가동률을 확보한다면 현재 북한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데 충분한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 남한의 수력 발전 비중이 2%인데 반해 북한은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기존의 화력 발전소들이 석탄 부족으로 정상 가동을 못해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고, 봄과 여름의 가뭄으로 인해 댐의 저수량이 감소하여 수력 발전에 의한 전기 생산도 감소하였다. 겨울에 들어 전기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겨울에 물이 얼어서 발전소가 가동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전기 회선들은 낡고 훼손 되었으며 전기선도 부족한 실정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수력과 화력 발전량의 30%가 배전망을 지나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력 생산을 늘리기 위해 북한은 전국의 강이나 지류에 소규모 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나*32) 전기 요구량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건설 중인 KEDO 원자력발전소가 정상 가동될 때까지는 북한의 전력 사정이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북한의 전력부문 회복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노후된 발전시설을 복구하고 현대화하는 것이다. 몇몇 발전소를 제외하고는 송배전 설비 거의 전체를 개보수해야 할 정도라고 하니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도 남북의 에너지 협력은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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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좋은 벗들. 2000년 1월 국경지역 난민 보고서. 2000.2.26
*28) 한겨레신문 2002.6.9
*29) F. David. 북한 에너지 분야의 현 상황과 향후 전망. 1997.9. www.kotra.co.kr
*30) 김경술. 북한의 에너지 수급실태와 전망. 월간 통일한국 2002년 7월
*31) 통일부. 최근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추진방향. 2001.12
*32) 와인가트너, 대북지원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1999.10.15 출처 : www.kotra.or.kr
97년5월부터 99년7월까지 2년 넘게 세계식량기구 평양사무소장으로 근무한 와인가트너씨 부부가 콜롬비아 주에 있는 빅토리아대학에서 99년10월15일 행한 연설 내용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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