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대북지원도 실용주의로"
"남북 이질성 예방 위해서도 北어린이 지원 중요"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 "보건의료분야의 인도주의적 지원은 어떤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돼야 한다. 적대관계라 하더라도 지원해야 하며 남북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이사장을 4년째 맡으면서 남한 의료계 대북지원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유기덕(柳基德.55) 한의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대북의료지원에 대한 견해를 이같
이 밝히고 실용적인 대북지원을 강조했다.

북한에서 최소 수십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7년 6월 의료계 인사들이 만든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가 이듬해 사단법인으로 공
식 출범할 때부더 참여한 그는 줄곧 북한 어린이를 위한 의약품 지원에 앞장섰다.

유 이사장은 "북한에서 큰물 피해가 겹쳐 엄청난 피해가 생겼을 때 생명과 건강에 가장 위협
을 받은 계층이 바로 어린이와 노인들이라는 생각에 지원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초심(初
心)'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북한 상황을 보면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어린이부터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뜻
을 같이 하는 한의사와 의사, 약사 등 의료인들이 어렵지 않게 하나로 모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
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이렇게 만들어져 해마다 2~4차례 북한에 비타민, 수액제, 철분제, 이
유식, 항생제 등 다양한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으며 2002년부터는 '북녘 어린이 건강실태 보고
서'를 매년 발표하며 북한 어린이들의 열악한 성장 환경을 주시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지원대상을 어린이관련 시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혜택을 주기 위해 평양시
내에 있는 의료시설인 철도성병원 현대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 차례 평양을 방문한 유 이사장은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열악하
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보건의료 지원협력은 그야말로 연속성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남북간 어린이들의 체격과 건강의 격차가 심해지며 민족 동질성에도 틈이 벌어지
고 있다"면서 "통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이질성 위기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대북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는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의 중책까지 맡아 전국 한의업계를 대표하고 있는 그는 보
건의료분야의 대북지원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관련, "정부가 민간차원에서 하는 지원협력을 대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정부는 많은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갖고 있는 민간단체들 가운데 강
한 실천력을 갖고 있는 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어린이영양관리센터에 제약시설 만들어 줬는데, 제약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밑에다
타일을 깔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타일까지 지원했더니 의료지원단체가 웬 타일까지 가져다
주냐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대북지원의 현주소다."
그는 이어 대북지원사업을 벌이며 겪었던 한 일화를 이렇게 소개한 뒤 "대북지원도 좀 실용주의
로 가야 한다"며 "의료지원도 궁극적으로는 환자를 잘 돌보고 잘 치료하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는
만큼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지원을 하면서 걸림돌로 느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한 질문에는 "남측의 지원물자
들이 배를 통해서만 수송하다보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면서 "지원물자를 육로로 보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대북 전략물자 제한규정과 관련해서도 "혈액검사를 하는 원심분리기의 경우 남측에서는 웬만
한 실험실에서는 어렵지 않게 갖추고 있는 기기인데도 전략물자 제한 규정으로 북한에서는 꼭 필
요한 물자를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현실적이지 않는 규정이나 기준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원과 후원자 등 100여 명과 지원사업장을 둘러보기 위해 이달 8~11일 평양을 방문한 그는 북
측이 "사전에 잡힌 일정을 바꾸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거나 "일 처리가 다소 늦은 편"이라고 북
측 당국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하지만 "서로 격차가 많은 상태에서 여건이 열악한 쪽에 지원할 때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활동 방향에 대해 유 이사장은 "처음에는 완성의약품을 보냈고 그 다
음에는 시설 현대화에 주력해 왔다"면서 "앞으로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미래의 통일을 대비해 '지
원협력'에서 '협력지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우리 본부가 보건의료 지원에 뜻이 있는 다른 단체나 개인의 창구 역할을 하고
효과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터미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
했다.

hsh@yna.co.kr
(끝)
<연합뉴스 2007/11/11>